4살 아이와 제주 26시간 친환경, 친동물 여행기
글 - 서보라미 국장 (휴메인 소사이어티 인터내셔널.HSI)
조카가 말을 알아 듣기 전부터 늘 자연 서식지에서 살고 있는 동물들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바다에서 수영하는 돌고래와 오징어를 보여주며 이 친구들의 집이 바다라고 알려주고, 코끼리와 뱀을 보여주며 이 친구들은 숲속이 집이라고 말하며 동물들이 사람이 아닌 같은 종의 동물들과 함께 있는 영상을 보여주곤 했다. 그래서인지 집에 있는 고래류 인형만 몇개인지 모르겠다. 바다에서 헤엄치는 돌고래를 영상으로 보며 늘 함께 돌고래네 집에 가서 인사하고 오자 했는데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이번에 조카와 둘이서 제주도 여행을 계획했다.
짧게 26시간을 머무는 것이지만 가능하면 자연을 많이 겪고, 자연에 있는 생물들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이왕 가는 것 환경에 해가 안 되는 여행을 해보기로 했지만 시작부터 쉽지 않았다. 정말로 환경을 생각하면 탄소배출이 많은 비행기 대신에 선박을 이용해야 하지만 시간이 넉넉치 않아 비행기를 택하고 대신 비행기 안에서 늘 넘쳐 나는 플라스틱 소비를 줄이는 것을 실행해보기로 했다.
채식을 할 수 있는 식당도 미리 섭외해야 했다. 나는 끼니를 놓쳐도 상관이 없지만 어린 아이가 배고파서 땅에 주저앉아 울어버리면 어쩌나 미리 걱정이 됐다. 사실 이렇게 조카와 단 둘이 오래 있는 것이 처음이었다. 그래서 비상 상황을 대비하여 여행 전날 미리 유제품이 들어가지 않은 간식을 챙겨 놓고 드디어 제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제주도내에서 이동은 이왕이면 대중교통을 이용하고자 차량 렌트는 별도로 안 하기로 했다. 여행 바로 전날까지는… 아무리 생각해도 돌고래가 자주 보인다는 해변가에 가고 숲도 가고 채식 식당도 골라서 가려면 어린 아이를 데리고 달래가며 버스를 갈아타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 결국 떠나기 바로 전날 제주도 협동조합을 통해 차량을 렌트했다.
필자도 몇 년전 제주도 해변가를 따라가다 우연히 돌고래 떼를 만난 적이 있다. 나와 같은 방향으로 북쪽으로 이동하는 돌고래들을 우연히 보고 기분 좋았던 기억이 아직까지도 생생하다. 이런 기억을 조카에게도 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램이 컸다. 조카는 가기 전부터 돌고래 그림을 그리며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한 편으로는 바다에서 언제 나올지 모르는 돌고래들을 못 보면 어쩌나 염려도 많이 되었다. 그래서 바다로 나가 보트를 타고 보는 투어를 신청할까 했지만 홈페이지에 안내된 대로 정말 바다와 해양 생명들을 존중하며 운영하는 것인지 몰라 선듯 내키지 않았다. 좀 더 검색을 해보니 제주도 해양동물보호단체인 핫핑크돌핀스에 의하면 보트 투어를 하게 되면 돌고래떼를 좆아가는 경우가 있다고 하는데 이는 자연에 사는 무리에 스트레스를 줄 수 있어, 보트 투어는 하지 않고 무작정 바다로 나가보기로 했다.
비행기에서는 준비해간 아이용, 어른용 텀블러에 생수로 가득 채우고 도착하자 마자 들렸던 곳은 제주시에 위치한 식당. 다행히 완전 채식 메뉴가 여러가지 있었고 어린 아이가 먹기에도 적절하게 간이 되어 조카도 맛있다며 잘 먹었다. 식당에서 직접 만든 비건 과자와 제주산 과일까지 배부르게 먹고 해변가로 출발. 아침 일찍부터 출발하여 식사 후에는 식당 주변의 잔디밭을 뛰어 다니고 처음 보는 곤충을 따라다니며 기분 좋다고 춤까지 춘 덕분인지 차에 타자마자 잠이 들었다.
중간에 내려 잠시 쉬어 갈 때마다 눈에 거슬린 것은 길가에 버려진 수많은 쓰레기였다. 조카에게는 쓰레기를 버리면 새와 물고기가 많이 아프니 절대로 길가나 해변에 버리면 안 된다고 나도 모르게 몇 차례 말을 했나 보다. 해안도로에 차를 세우고 바다로 걸어가는데 조카가 “여긴 왜 이렇게 쓰레기가 많지!”라며 멀찍이 있던 플라스틱 물병을 주으러 달려갔다. 맨손으로 플라스틱 병뚜껑, 담배꽁초 등을 주으려는 바람에 나머지는 어른이 하겠다며 말려야 하는 상황까지 발생.
*해안도로가에 주차를 하자마자 차에서 내려 본 널브러진 플라스틱 병들을 향해 달려간 아이 “여긴 왜 이렇게 쓰레기가 많지!”
채식 식당에서 살고있는 고양이. 길고양이를 챙겨주는 할머니를 자주 보는 덕에 길에서 고양이를 보면 항상 참견을 하고 넘어간다.
둘째 날 아침, 주말이어서 숙소 주변에 문을 연 채식 식당이 없어 이른 점심을 먹기로 하고 대신 배고프다는 아이를 달래며 공원에서 딸기로 만든 간식을 먹었다. 앉아서 먹던 아이는 아래 줄줄이 이어지는 개미 행렬을 가만히 보고있다가 ‘이모, 딸기 과자 개미랑 나눠 먹어도 돼?’라고 묻는다.
이른 점심을 먹은 식당 주변은 잔디밭으로 둘러 쌓여진 곳이었다. 그래서 아이가 좋아하는 주변의 꽃들과 곤충들을 살피고 고양이를 한동안 쫒아 다녔다. 비행기를 다시 타기 전 바닷가로 한 번 더 나가서 돌고래를 찾아볼까 했지만 비행기 시간에 맞추어 서두르는 것 보다는 주변 자연을 보는 것도 좋은 듯 했다. 무엇보다 아이는 고양이와 할 대화가 아직 많이 남아있는 듯 했다. 이렇게 돌고래에게는 다음에 인사하기로 하고 제주도 여행을 마무리 했다.
그레타 툰베리처럼 유럽에서 미국까지 무탄소 배출 여행을 위해 배를 타고 이동한 것 같은 친환경 실천은 못 했지만 이번 조카와 함께 한 제주도 여행으로 자연과 동물 친화적인 제주도 여행을 할 수 있다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 꼭 박물관과 동물 체험관을 가지 않아도 숲과 바다에 볼 것, 만질 것, 느낄 것, 들을 것, 냄새 맡을 것, 호기심을 자극할 것이 풍부한 곳이 제주도이다.
하지만 자연으로 이루어진 제주도가 변하고 있다. 길을 내기 위해 숲을 밀어 정작 제주도가 집인 야생동물들의 서식지를 없애고 해외에서 동물을 들여와 가두어 놓고 사람을 위한 볼거리를 만들고자 하고 있다. 수천그루의 나무를 없애는 것은 한 순간이다. 하지만 이런 숲을 살리는 데는 수백년 이상이 걸린다. 왜 있는 그대로의 자연과 야생을 존중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것일까? 언제 조카와 다시 방문할 진 모르겠지만, 그 때도 제주다운 제주가 남아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