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을수록 선명한 우리
- 2023 퀴어 업 캠페인을 기획하며
‘그냥, 원래 그래!’
가벼운 투정의 말입니다. 뭐라 설명하기에는 얽힌 실타래처럼 복잡하지만, 그럼에도 내 마음을 이해해 주기를 바랄 때 쓰입니다. 설명이란 왜 어려울까요? 자신의 말이 ‘옳고 그름’의 잣대에 오르는 게 두려워서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야기를 꺼내도 반박 받을 바에야 드러내지 않는 것이죠. 그렇게 소통이 부재한 마음속에는 깊이 상처가 앉습니다.
우리는 더불어 살아갑니다. 그래서 차별, 혐오 없는 세상을 위하여 어떤 자세로 상대방을 대해야 할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 그렇구나’가 가장 부드러운 태도일 것입니다. 인간은 설명해야 할 존재가 아니라 이해되어야 할 존재이기 때문이지요.
사회적 소수자란, 신체적 또는 문화적 특징 때문에 자신이 속한 사회의 주류 집단으로부터 구분되어 불평등을 겪는 개인/집단을 말합니다. 이 범주 안에 성소수자가 속해 있습니다.
성별 정체성, 성적 지향, 성 표현 등 성적인 부분에 있어서 다를 뿐인, 같은 사람들이죠. 러쉬는 성소수자와 서로를 이해하며 연대해 왔습니다. 채용하여 함께 즐겁게 일하거나, 퀴어 퍼레이드에 매해 참가하거나, 매장에서 퀴어 캠페인을 진행하는 등 우리만의 방식으로 말이에요.
2023년 7월 1일, 제24회 서울퀴어퍼레이드가 을지로2가 일대에서 열렸습니다. 올해도 러쉬코리아는 어김없이 행진에 참여했죠. 명동역 ~ 소공로 ~ 서울광장 ~ 종각역을 걷고 또 걸었습니다.
올해 퀴어 업 캠페인의 슬로건은 적을수록 선명한이었어요. 여러분은 이 슬로건을 어떻게 해석하셨나요? 오늘은 ‘적다’라는 단어의 중의적인 뜻을 통해 어떠한 메시지를 전하고자 했는지 들려드리려고 합니다. 퀴어 업 캠페인 기획자 페퍼를 만났습니다.
소통의 시작은 이해의 첫 단추
페퍼 : 저는 말과 글의 힘을 믿는 편이에요. 단순히 생각만 할 때보다 그 내용을 말로 꺼내거나 글로 쓰면 타인은 물론이고 자신에게도 큰 영향을 준다고 믿거든요. 내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을까 봐 주저하고, 망설이면 우리는 그 사람을 이해할 수 없어요. 혹시 모르죠, 상대방도 나와 같은 생각일지! 서로를 표현하며 알아가는 것은 너무나도 중요하니까, 그에 맞는 콘텐츠를 기획해야겠다고 다짐했죠. 그래서 전체적인 콘텐츠를 모두 글을 적는 행위에 초점을 뒀습니다. 글을 적을수록 가치관이 또렷해지고, 수가 적어도 그 존재가 선명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무지개 티셔츠
이번 2023 퀴어 업 캠페인은 전국의 모든 러쉬 매장에서 진행했어요.
각 매장의 직원과 고객들이 흰 티셔츠에 펜으로 메시지를 적었습니다. 포인트는 각 매장별로 펜의 색깔이 다르다는 점이에요. 연대와 평등의 마음이 다양한 색깔로서 모이면 다채로운 무지개가 된다는 큰 그림을 그린 것이죠.
사실, 2022년에 청소년 성소수자 위기지원센터 띵동과 함께 무지개 빛깔 커뮤니티 샵파티를 진행한 적이 있어요. 퀴어 업 캠페인을 매장 한 곳에서만 진행하는 것이 아쉬웠습니다. 성소수자는 어디에나 있을 텐데 더 많은 사람에게 뜻을 전하는 데 한계가 보여서요.
마음속의 미해결 과제로 남아있었는데, 어느덧 1년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2023 퀴어 업 캠페인 담당자가 되며 전국에서 진행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생겼습니다! 더 넓은 영역에서 더욱 많은 사람들이 캠페인에 참여할 수 있어서 아주 뿌듯합니다.
핑크 이력서
매장 안에 핑크 우체통을 설치해 ‘핑크 이력서’를 받으며 채용의 기회도 마련했습니다. 핑크 이력서는 성소수자뿐만 아니라 이들을 지지하고 연대하는 누구나 러쉬코리아 매장 직원으로 지원할 수 있는 러쉬만의 특별한 제도입니다. 이력서에 닉네임 및 자신을 나타내는 한 단어 등 사회적 기준을 벗겨낸 자신의 존재를 표현할 수 있는 내용을 솔직하게 적고, 우체통에 넣기만 하면 돼요. 성소수자에 대한 직장 내 편견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 존재하기 때문에, 핑크 이력서를 통해 러쉬코리아처럼 성소수자를 포용하는 기업이 늘어났으면 하는 바람을 담았죠.
평등한 채용이란
HR팀 소울에게도 물었습니다. 러쉬코리아 채용 관련 담당자로서 바라보는 핑크 이력서의 의의와 의미에 대해서요.
소울 : 러쉬코리아에서 진행하는 모든 채용은 성별, 외모, 출신 지역, 가정 환경, 나이, 성적 지향 등에서 차별 없이 이루어집니다. 지금까지 너무나 당연하게 행해지던 것이었는데, 올해 pride month를 기념하며 러쉬만의 핑크 이력서를 부활시켰습니다. 특정 성별에게만 업무를 기대하거나, 직무와 관련 없는 신체적인 요건을 내세우거나, 성소수자에게 기회를 주지 않는 등. 채용 과정 속 다양한 차별과 은연중에 깔려 있는 냉소적인 분위기 때문에 모두가 평등하게 누려야 할 환경과 자격조차 맘 편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로 인해 국가에서도 다양한 채용 시 차별을 금지하는 법들을 만들어 구직자들을 보호하고 있지요.
러쉬의 핑크 이력서는 이에 한 발짝 더 다가가 성소수자들과 그 지지자들에 더 큰 목소리를 냅니다. 우리는 당신을 차별하지 않고, 당신이 어떠한 모습과 생각과 성향을 가지고 있든 간에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당신을 보겠다는 메시지를 퀴어 퍼레이드 동참과 매장에서의 퀴어 업! 캠페인으로 전달하고자 합니다. 모든 종류의 차별이 채용, 회사, 세상에서 사라질 때까지, 러쉬코리아와 인사팀은 열심히 달려갈 것입니다.
그냥, 그저, 그대로. 누군가 자신의 입장과 생각을 드러낼 때 필요한 자세는 그저 손을 잡고 들어주는 것, 바로 연대가 아닐까요. 한 존재를
특정한 기준에 빗대어 판단하기보다 그냥 인식하기, 특정 행동을 해석하기보다 그대로 바라보기만 시작해도 소통의 문이 열릴 것이라 믿습니다. 다름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순간, 지금껏 살아보지 못한 더 큰 세상이 펼쳐질 테니까요. 가지각색의 사랑과 저마다의 감정을 경험하며 스스로 선명해지기를 바랍니다.
적을수록 선명한 우리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