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실험의 끝이 이제는 보이는가

러쉬 이야기

러쉬 이야기
  • 동물실험의 끝이 이제는 보이는가

2018년 11월 16일 독일 베를린에서는 '러쉬 프라이즈(Lush Prize)' 컨퍼런스와 시상식이 열렸습니다.

러쉬는 국내에서도 화장품 동물실험 금지를 위해 노력하는 브랜드로 많이 알려져 있는데요. 2012년부터는 영국의 윤리적 소비자 연구소(Ethical Consumer Research Association)와 함께 '러쉬 프라이즈(이하 프라이즈)'를 신설하여, 화장품 뿐 아니라 모든 동물실험 분야를 대체하기 위해 노력하는 개인 및 단체를 선정하여 후원하고 있습니다. 이 시상식은 2년에 한번씩 개최하며, △과학 △교육 △홍보 △로비 △신진연구자 총 5개 부문으로 나눠 총 상금 35만 파운드(한화 약 5억원)을 수여합니다.  

 

이제는 3R*이 아닌 1R(Replacement) 시대

*1959년에 알려진 3R 개념은 동물실험 복지의 주요 원칙으로 동물실험대체(Replacement), 동물 수 감소(Reduction), 실험동물 복지 개선(Refinement)을 의미

 

필자는 2014년 아시아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프라이즈 수상자를 결정하는 심사단으로 참여했었습니다. 동물실험을 대체하기 위해 노력한 지원자들을 공정하고 꼼꼼하게 심사를 하기 위한 프라이즈 팀의 노력을 느낄 수 있는 자리였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아시아에서는 아직 실험동물 복지를 위한 3R 원칙을 제대로 도입하기 위해 노력하는 한편, 유럽, 미국 등은 1R(Replacement, 대체), 즉 실험동물 사용을 대체하는 방법을 찾기 위한 연구 활동이 많다는 점이었습니다. 동물실험을 대체하기 위한 연구 환경이 이 국가들처럼 녹록치 않은 상황에서, 과연 대한민국 연구 분야에서도 수상자가 나올 수 있을까 염려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2014년, 그 해의 컨퍼런스 주제는 만장일치로 "이제는 3R이 아닌 1R 시대"로 정해졌습니다. 
 

그리고 2018년, 러쉬코리아의 초청으로 프라이즈 행사에 다시 참석하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동안 국내 학회 등을 참석하며 동물실험을 대체하는 연구 분야에 대한 소극적인 관심과 부족한 지원을 어떻게 풀면 좋을지 어려움을 겪고 있던 터라, 이번 컨퍼런스는 세계의 흐름을 다양하게 접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동물실험의 끝이 이제는 보이는가"

이번 프라이즈의 컨퍼런스 주제는 "동물실험의 끝이 이제는 보이는가?(Is there an end in sight for animal testing?)"였습니다.



 

세션은 행사의 주최국인 독일에서의 변화를 들어보는 것으로 시작되었습니다. TissUse의 선임 연구원 일카 매쉬메이어 박사님으로부터, 지난 10여 년간 사람의 장기 기능을 모사한 칩의 개발이 활발하게 이루어져, 지금은 이를 합쳐 복합 장기 기능을 모사한 칩 개발에 대한 연구 내용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사람의 세포를 배양하여 3D 형태로 만든 오가노이드(organoid) 모델도 소장, 췌장, 피부, 폐에 대해서는 상업적인 시험 모델이 시판되고 있다고 합니다.
 

2018 과학 부분 수상자 허동은 박사의 '아이 온 어 칩'(Eye-on-a-chip) 기술
 

첫 세션이 끝나고, 미국 펜실베니아 대학교의 바이오 엔지니어링부 부교수인 허동은 박사님(Dr. Dan Dongeun Huh)의 기조 발표가 이어졌습니다. 허 박사님의 장기 칩 연구는 국내에도 몇 차례 보도된 바 있습니다. 사람의 폐를 모사하는 칩 개발로 과학계에서도 많은 관심을 받았고, 여러 장기 칩 모델들을 연구하시며 이번에는 사람의 깜빡이는 눈을 모사하는 눈 칩. 즉, 블링킹 아이 온 어 칩(Blinking eye-on-a-chip)을 개발했습니다.

이 같은 새로운 기술로 시험할 수 있는 방법들이 소개되자, 미국 정부에서도 관심을 갖고 새로운 연구지원 프로그램 론칭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연구 중 하나는, 미국항공우주국(NASA)과 함께 우주환경에서 사람에게 일어나는 다양한 부작용을 해결할 방법을 찾는 프로젝트입니다. 조만간 이 칩 모델이 우주선을 타고 지구 밖으로 보내져 다양한 연구가 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이(장기칩) 연구는 우리가 시험관 내 시험(in vitro) 모델을 생각하는 방법을 완전히 바꿔 놓았고, 새로운 연구프로그램을 론칭하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 NIH& FDA

"NIH는 DARPA, FDA와 협력하여 약의 안전성과 효능을 시험하는 칩을 개발할 것입니다. 이는 현재 이용되는 방법보다 훨씬 더 빠르고 효과적입니다." – 오바마 전대통령


오후 세션은 장기 칩 모델들이 어떻게 동물실험을 대체할 수 있는지, 동물실험 근절을 위한 세계 동향은 어떤지 들어보는 시간이 이어졌습니다. 연자 중에는 HSI(Humane Society International, 휴메인소사이어티인터내셔널) 트로이 사이들(Troy Seidle) 이사의 발표도 있었습니다.

2013년 유럽 화장품 동물실험 금지로, 동물실험을 법으로 금지한 국가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1년 동안 진행되는 농약에 대한 개 실험의 경우, 과학계에서는 필요없는 동물실험이라는 것을 뒷받침하는 논문들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농약 생산 주요 국가들의 규제사항에서 이 항목이 삭제되기까지 20년 가까이 걸렸습니다. 긍정적인 것은, 중국도 화장품 동물대체시험을 도입하기 위한 시도들이 일어나고 있고, 컴퓨터 모델링 등과 같은 새로운 접근법을 이용한 방법으로 동물의 희생을 줄이기 위한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2018 로비 부분 특별상 한정애 의원

이후에는 프라이즈에서 특별상을 수상한 한정애 의원의 발표가 이어졌습니다. 국내 실험동물의 희생은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2015년부터 시행된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화평법)' 개정안을 통과시킨 공로를 인정받은 것입니다. HSI는 법안 제안을 시작으로, #고통없는과학 캠페인을 펼쳐, 개정안 통과를 위한 1만 명의 서명을 의원실에 전달하기도 했습니다.

개정된 법안은 동물대체시험법을 우선시하며, 동일한 항목에 대한 반복적인 동물실험을 금지하도록 합니다. 또한 국가와 산업계의 책무로 동물실험을 대체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일 것을 명시합니다. 한 의원의 수상 소감은 어느 후보자보다 울림이 컸는데요, 특히 현직 국회의원이 이 같은 노력을 기울인 점에 대하여 덩달아 힘이 난다는 후문이 많이 들려왔습니다.

 

동물실험 대체 연구 고집, 힘들지만 가야할 방향 

신진연구자 상을 받은 중국 칭하대학교 의과대학 지앙와 박사는 사람의 줄기세포를 이용하여 임산부가 복용할 수 있는 항암제를 만들기 위한 연구로, 싱가폴과 미국에서 특허를 받았다고 합니다. 수상 소감을 밝히며, 중국에서 동물로 실험을 하지 않고 연구를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이런 환경 속에서 본인이 하고자 하는 연구가 옳은 방향인지 의심이 들기도 했다고 합니다. 칭하대학교에서도 동물실험이 많이 이루어지지만, 잔인한 동물희생을 없애려 이 같은 연구를 고집한 결과가 이와 같이 인정받게 되어 정말 힘이 난다고 덧붙였습니다.


또 다른 신진연구자 상을 받은 나탈리아 박사는 미국의 다트머스 대학교에서 박테리아 감염에 의한 신약개발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나탈리아 박사는 동물실험을 하는 연구실에 있었지만, 그 잔인함 때문에 컴퓨터를 이용한 인실리코(in silico) 접근법을 사용하는 연구실로 옮겨 비동물 시험방법으로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고 밝히며, 동물실험의 윤리적, 과학적 한계를 본인의 연구로 극복하고 싶다고 덧붙였습니다.

또 다른 신진연구 수상자인 대만 치아퉁 국립대학교의 바이오 메디컬 엔지니어링 연구소 관유 박사는, 대기오염으로 인해 사람의 폐가 받는 영향을 정확하게 측정하는 모델을 만들기 위해 동물을 사용한 실험이 아닌 칩으로 사람의 폐를 모사함으로써, 향후 대만 정부가 효과적인 신약개발에 있어 이 모델을 채택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습니다. 대만에서도 동물실험을 대체하려는 노력이 얼마나 어려운지, 현재 칩 모델을 개발하는 곳은 두 곳 밖에 되지 않아, 이 같은 컨퍼런스를 통해 해외 연구진과의 활발한 교류에 대한 기대감을 비쳤습니다.  

 

연구실도 비건(Vegan)으로 운영


엑셀러레이터(XCELLR8) 캐롤 트레져 박사 (사진: 러쉬 제공)

2014년 러쉬 프라이즈 상을 받은 시험기관 엑셀러레이터 캐롤 박사도, 처음 동물에서 유래한 세포를 사용하는 것까지 완전히 배제하는 연구소를 설립했을 당시, 이렇게 가도 되나 하는 의심이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프라이즈 수상을 통해 올바른 비젼으로 가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높아지는 비동물 시험법에 대한 관심으로 엑셀러레이터는 계속 성장하고 있는 추세라고 말했습니다. (케롤 트레져 박사 한글 인터뷰 기사 보기)



2018년 '러쉬 프라이즈' 수상자 단체 사진

동물들에게는 답답한 국내 상황 
최근 정읍에 3,000마리를 수용할 수 있는 영장류 자원지원센터가 문을 열어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성남시에 새로운 동물실험 센터 구축이 공시되었으며, 3년전에는 '아시아 최대'를 자랑하는 동물실험 시설이 서울에 들어섰습니다.

수 년 전 베트남에 위치한 거대 규모의 실험용 영장류센터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이곳은 아프리카에서 잡혀온 원숭이들이 실험용으로 번식되어 해외의 실험기관으로 보내지는 중간지점으로 이용되었습니다. 그때 원숭이들이 갇혀있는 케이지를 지나며, 마치 척박하고 삭막한 감옥에 있는 것 같았던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작은 케이지에 빼곡히 갇힌 원숭이들은 겁에 가득 찬 눈으로 창틀 사이에 얼굴을 가까이 대고 밖을 보고 있었으며, 좀 더 크기가 큰 방에 갇힌 원숭이들은 전형적인 정형 행동을 보이며 반복적으로 왔다 갔다를 쉴 새 없이 하며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 지에 대해 눈길을 떼지 않았습니다. 수 천 마리 원숭이들은 왜 자신들이 거기에 갇혀 있어야 하는지 영문도 모른체 얼마나 억울하고 답답했을까요.

정읍에 새로 문을 연 센터를 직접 보지는 못 했지만, 아무리 실험실 환경을 동물에게 최적으로 만든다고 해도 윤리적인 동물실험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시험하려는 물질을 억압적으로 투여하고, 먹이고, 바르는 것을 반복적으로 하다보면 고통이 수반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한국은 첨단 시설과 통신이 발달한 나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다양한 산업분야는 과학발전의 혜택을 받고 있지만, 동물실험은 왜 좀처럼 바뀌지 않는 것일까요? 사회가 함께 고민하고, 모든 이해관계자들이 바꾸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내년에는 또 몇 백만 마리의 동물들이 죽어갈지 모릅니다. 

동물을 위하여, 더 나은 과학발전으로 사람을 위하는 동물실험 대체 분야의 다양한 노력을 해주시는 분들, 또 이를 축하하는 프라이즈와 함께 정말 동물실험의 끝이 보이는 시대가 하루 빨리 오기를 바랍니다. 국내 곳곳에도 이 같은 연구를 진행하기 위해 노력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분들과 함께 HSI도 단체로서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해 나가겠습니다! 


"기초적인 생물학적 반응에 있어 (사람과 동물) 종 간의 차이점을 밝히는 증거들이 늘어나면서, 동물을 이용한 연구는 과학적, 경제적, 윤리적 우려를 낳고 있습니다. 지난 10여년간 해온 저의 연구는, 동물을 기반으로 하는 기존 방법의 한계를 넘어 혁신적인 생명공학 발전을 꾀합니다." - 미국 펜실베니아 대학교 바이오엔지니어링부, 허동은 박사 (Dr. Dan Dongeun Huh)

저자: 서보라미 정책국장 (휴메인소사이어티인터내셔널, https://blog.naver.com/hsianimals